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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국사 | 문화재와 유적지 - 통영 진주

by KISCH 2020.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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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임진왜란

 

명칭 — 임진왜란 (국사교과서)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일본을 낮춰부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임진전쟁 (동아시아사교과서) 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전개 —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나라를 통해 중국까지 진출할 야욕을 갖고 있었습니다. 20일만에 서울에 도착했지만 선조는 이미 평양을 거쳐 의주로 도망가게 됩니다. 비겁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왕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지 않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일본은 보급을 위해 배를 이용하지만 우리에 이순신 장군이 등장합니다. 

 

이순신 전투 — 옥포 해전, 사천 해전, 당포 해전, 한산도 대첩, 부산포 해전

 

 

 

 

이순신

 

 

32세 무과 급제하고 류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사 초고속 승진 (본래 원균 자리) 하게 됩니다. 사간원에서 태클을 걸었지만 선조가 인정해주십니다.

 

삼도수군통제영

 

이순신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

  • 세병관 :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 건물로 다른 건물은 일제 시대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두보의 시를 인용해 무기를 은하수로 닦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세병관

 

 

거북선

 

거북목이 높이 있으면 대포를 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 장점 : 바닥이 평평해 제자리회전이 가능하고 포를 쏴도 반동으로 배가 뒤집히지 않고 안정적이라는 것입니다.

 

거북선

 

  • 전술연 : 다양한 색과 모양의 조합으로 아군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연
  •  

한산도 대첩

 

한산도 — 전략적인 유리함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기게 됩니다. 

 

제승당 — 짠 맛이 없어 전쟁 당시 이순신과 부하들이 1,340일 동안 마신 우물이라고 합니다.

 

한산도 대첩 — 1592년 임진왜란 때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로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입니다.  

 

전개 — 계속 된 패배로 일본은 '와키사카 야스하루'라는 지들 나라 최고 장군을 내보내게 됩니다. 이순신을 우습게 본 와키사카는 70여 척을 몰고 옵니다. 좁은 '견내량'에서 싸우는 것은 불리하다 생각 한산도 앞바다까지 유인해 학익진으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59척의 배를 침몰시키고 이순신의 배는 단 한 척도 침몰되지 않았습니다.

  

 

 

 

 

 

 

 

진주 

 

 

진주성

 

의의 — 진주대첩의 지리적 중요한 위치 

진주대첩 — 임진왜란 때 조선군과 왜군이 벌인 두 번의 싸움  

 

김시민

 

시호 충무공. 임진왜란 때 육지를 지켜낸 장군으로 허수아비로 적군의 총알과 화살을 낭비하게 만들고 노인과 여자를 변장시켜 군사가 많아보이게 만드는 등의 심리전이 능한 지략가형 장수였다고 합니다.  

 

1차 진주대첩 — 이순신에 의해 바다로의 보급이 막힌 일본군은 육로를 뚫고 전라도의 곡창지대를 공략해 보급을 지속하기 위해 진주를 공략하게 됩니다. 왜군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대장군전 (나무 미사일)로 왜군의 탑을 무너뜨리고 조란탄 (쇠구슬이 산탄총처럼 흩날림)과 비격진전뢰 (시한폭탄)으로 진영을 붕괴합니다. 6일째 적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 김시민 장군을 대신해 이광악 군수가 진두지휘하고 적장에게 화살을 날려 명중시킵니다. 그 후 의병들과 함께 일본군을 물리치게 됩니다. 김시민 장군이 돌아가시자 진주성 주민들은 1년 동안 슬픔에 잠겨 술과 고기를 멀리했다고 합니다.

 

2차 진주대첩 — 명나라가 '순망치한[각주:1]' 조선을 도와주러 오자 일본은 '한국의 동장군'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명나라와 거래를 하고자 합니다. 휴전협상 중 갑자기 10만 대군을 이끌고 진주성을 공략하는 쓰레기 같은 짓을 합니다. 마침내 진주성이 함락되고 맙니다. 촉석루에서 왜장이 축하연을 벌이고 '논개'는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왜장을 끼어 안고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정유재란 

 

 

정유재란

 

전개 — 조정을 장악한 서인세력의 비호를 받은 원균의 모략과 조정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삼도수군통제사를 원균에게 빼앗기고 옥에 갇혀 백의종군으로 다시 전장에 나가게 됩니다.

 

칠천량해전 — 원균은 칠천량에서 일본군에게 패해 160여 척의 배를 잃고 죽고맙니다. 이에 선조는 이순신에게 사과편지를 보내고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르게 됩니다. 아직 이순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이순신 전투 — 

  • 명랑 해전 : 이순신은 해남군 울돌목을 지키고 어란진에 도착한 일본군은 일자로 들어오다 수중철책에 걸려 전진하지 못해 뒤를 따라오던 배에 앞 배에 충돌하여 31척을 잃고 맙니다.
  • 노량 해전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왜군은 쫓겨 나가고 명나라와 연합해 이순신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됩니다. 관음포에서 7년간의 한을 풀어내며 왜군을 물리치고 안타깝게 총탄에 맞아 돌아가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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