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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국사 | 문화재와 유적지 - 울릉도 독도

by KISCH 2020.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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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역사

삼국사기[각주:1] — 신라 장군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속국으로 만들어 조공을 받으려 했습니다. 신라 입장에서는 고구려와 일본의 교역 중심 지역이었기 때문에 신라 입장에서는 거점 확보를 위해 굳이 배를 타고 점령하려 한 것이죠.

  

명칭 — 6C 지증왕 때부터 신라의 나라가 되어 통일신라를 지나 고려 시대에 와 명칭이 '우릉도 >> 무릉도 >> 울릉도' 로 바뀌게 됩니다.

  • 울릉도 : 우릉도 >> 무릉도 >> 울릉도
  • 관음도 
  • 죽도 
  • 독도 : 우산도. 전라도 사투리로 '독'이 돌입니다. 그래서 돌섬이란 뜻의 '독도'가 섬 이름이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울릉도 검찰 일기

이규원 — 고종이 울릉도에 검찰사로 파견한 이규원이 쓴 일지로 이 일지를 보고 1883년 16가구 54명을 이주 시키게 됩니다.

 

칙령 41호

고종 — 고종이 황제로 내린 칙령으로 울릉도를 군으로 승격, 주변섬들을 우리땅으로 발표합니다.  

 

 

 

독도

 

동국대지도, 아국총도, 해좌전도

신증동국여지승람 팔도총도 (조선 중기) — 독도(우산도)가 울릉도 왼쪽에 잘 못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꼬투리를 잡습니다. 

 

신중동국여지승람

 

 

동국대지도 — 조선 영조 때 지리학자 '정상기'가 제작한 지도로 오른쪽에 똑바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미 조선시대에 바로 잡았죠.

 

동국대지도

 

 

아국총도 — 정조 때 만들어진 작자미상의 지도로 울릉도 동쪽에 독도가 '우산도(독도)'라는 명칭으로 정확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국총도

 

해좌전도 — 19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작자 미상의 전도로 역시 '우산도(독도)'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해좌전도

 

일본은 이 지도들을 내밀자 닥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헛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우산도(독도)가 죽도일 수도 있지 않느냐?

 

관음도

 

세종실록지리지

 

 

우산무릉이도 재현정동해중 — 동해에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 두 개의 섬이 있다. 

이도상거불원 풍일청며즉망견 —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않고 날씨가 청명할 때만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
© 국가기록원

 

죽도는 날씨가 좋으나 나쁘나 계속 보입니다. 죽도는 독도(우산도)가 아닙니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 우릉도에서는 보인다 — 헛소리에 짜증난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일년동안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는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 실험을 합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동북아역사재단

 

 

 

 

 

 

 

 

 

돗토리 번 문서

안용복 — 서울에 사는 노충추의 사노비로 부산 왜관 근처에 살고 일본어를 잘 하셨다고 합니다. 울릉도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어느 날 일본놈들이 달려들어 '박어둔'이란 사람을 납치합니다. 안용복은 친구를 구하고자 뛰어들었지만 같이 납치됩니다. 이유는 일본 어부들은 조선 어부들이 고기를 다 잡아서 어획량이 준다고 일본 지방관리들에게 거짓보고를 합니다. 조선 어부를 잡아가서 자기들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안용복은 잡혀갔지만 호통을 치면서 말합니다.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땅인데 합법적으로 조업하는 우리를 왜 납치하느냐?

 

일본은 조선에 사신을 보내고 안용복과 박어둔을 부산 왜관으로 송환합니다.  

우리 땅에 침범했기 때문에 납치한 것이고 조선과 일본이 주고받은 서계(문서)에 '울릉도'란 말을 지워라

 

숙종이 대답합니다.

절대 못 지운다.

 

 

안용복이 다녀간 뒤 일본 중앙정부 측은 돗토리 번에 울릉도가 누구 관할인지 묻게 됩니다.

 

돗토리번

 

 

돗토리번 답변서 

 

돗토리번답변서
© MBC

 

 

다케시마 도해 금지령 — 이 후 일본인들에게 다케시마(울릉도) 가는 것을 금지하게 됩니다. 다케시마 도해 금지령

 

도해금지령
© 동북아역사재단

 

 

 

안용복은 그 후 일본놈들이 오나 안 오나 감시하러 독도로 갑니다. 종족특성이 양아치인 일본놈들은 역시나 또 옵니다. 안용복은 일본 어부들을 쫓아내고 어부들을 따라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배 안에서 그는 좋은 신발, 관복과 갓을 쓰고 스스로 '조울양도감세장' 즉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는 책임자라고 공무원사칭을 합니다. 일본에서 난리를 치고 난 뒤 조선으로 추방된 안용복은 특정법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사형'을 선고받죠. 이에 조선의 대신들은 너무 가혹하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유배'형으로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역사에서 안용복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그는 우리들에게는 누구보다 훌륭한 장군입니다. 

 

안용복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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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려 중기 김부식 쓴 역사를 기록한 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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