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정림사지
백제
수도 —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때 수도 한성이 무너져 웅진 (공주)으로 이전
무령왕릉
무령왕 — 백제 25대왕으로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겨 혼란에 빠져 있던 백제를 안정 시킨 왕
무령왕릉 — 벽돌식무덤. 잘못된 고분 발굴로 인해 1997년 영구 비공개로 결정되어 관람이 불가능합니다.
사신도 — 주로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지만 일부 백제 고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쪽 청룡, 서쪽 백호, 남쪽 주자, 북쪽 현무
정림사지
성왕 — 사비 천도. 국호를 '남부여' 로 바꾸게 됩니다.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왕입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 — 정교한 비율의 석탑. 해체할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하게 보존되어 사리함을 열 수가 없어 탑의 비밀을 아직까지도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했을 때 당나라 머저리 소정방이 '대당평백제국비명(백제를 징벌한 기념탑)' 라고 안타깝게도 낙서를 해놨습니다.
금동대향로 (국보 제287호) — 절에서 향을 피울 때 썼던 문화재로 도교와 불교의 복합적 양식으로 백제의 사상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화려한 장식과 과학적 설계가 일품.
- 상단 : 도교 봉황과 뚜껑 24신선
- 몸체 : 불교 연꽃
- 받침대 : 용
백제문화단지
백제문화단지
백제의 왕궁을 그대로 구현한 곳
사비궁 — 백제 시대 부여의 궁성
낙화암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 — 백제 31대 왕으로 나당연합군의 침입을 받아 당나라에 압송되어 중국 낙양에서 화병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백제의 마지막 왕입니다. 초기에는 효자였으며 신라의 성을 40개를 넘게 차지할만큼 지략가였지만 폭군이 되는 과정이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낙화암 — 수 많은 궁녀들이 적군에게 죽기 보다 깨끗하게 죽기 위해 대왕포 물가 높은 바위 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사비수 깊은 물에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미륵사
사찰
미륵사 — 일반적인 가람배치가 아닌 3탑 3금당식의 독특한 형식. 백제 최대 사찰로 서쪽의 탑만 남아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국보 제11호) — 일제강점기에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일제는 붕괴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처 발라 놓았고 1997년까지 그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2001년부터 복원을 위해 해체 중 1,400여년 간 잠들어 있던 '금제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습니다.
금제사리봉영기 — 서동요의 내용과 달리 백제 왕후는 신라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좌평 사택덕적 딸이 왕비이자 미륵사를 세운 인물로 2009년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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