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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국사 | 문화재와 유적지 - 부산

by KISCH 2020.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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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영도


1592년 — 임진왜란 침략지이자 일본의 대륙진출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곳 


수안역


동래읍성 전투 — 임진왜란 전투지로 해자 발굴터에서 유골, 갑옷 출토


수안역수자기


송상현 — 경상좌도 '이각'이 도망가서 동래부사(현재 부산시장) '송상현'이 문관의 신분으로 동래읍성에서 왜군과 대치하고 왜군이 길을 내어달라고 하자 목패에 '싸우다 죽는 것은 쉽지만 길을 내주는 것은 어렵다'고 써서 왜군에게 집어던지고 싸움이 시작됩니다. 전세가 기울게 되자 송상현은 북쪽 하늘을 보고 절을 4번 하고(임금이 계신 곳) 순절하게 됩니다.



송상현편지



고립된 성을 적군이 달무리처럼 포위하였고

큰 진영에선 구하러 오지 않는데

임금과 신하 간의 의리가 중하여 여기서 죽게 되오니

부모님의 은혜를 소홀히 여기는 불효를 용서하소서


- 송상현이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








용두산공원


초량왜관 — 조선과 일본이 무역을 한 유일한 장소. 왜구들의 약탈을 막기위해 만들어 준 장소

  • 왜군 : 일본의 정규군
  • 왜구 : 약탈을 하던 일본 해적


조선 통신사 역사관


조선통신사 —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 했던 공식 외교사절을 말합니다. 




6・25



40계단


6.25 당시 피란민들이 40계단 주변에 몰려 판자촌을 이루고 생활필수품과 일자리를 찾던 곳으로 또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던 장소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계단은 원래 위치에서 25m 떨어진 자리에 다시 만들어진 계단입니다.


40계단



아미동 비석마을


6.25 당시 부산역 주변에 모여든 피란민들 와서 살게 된 지역입니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묘지 위에 집을 짓고 살아서 비석마을이 되었다고 합니다.


최민식 갤러리 —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로 전쟁 후 재건 당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 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게 되는데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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