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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국사 | 문화재와 유적지 - 평창

by KISCH 202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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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참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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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 전국 4곳에 필사 보관 중이던 조선왕족실록은 '전주 사고'를 제외하고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져서 한 곳 더 늘려서 평창 오대산 산 속 깊숙이 보관하게 됩니다.


오대산 사고


사각 — 실록을 보관  

선원보각 — 왕실의 족보를 보관  

오대산 사고본 — 1913년 일제 강점기에 그걸 또 찾아내 일본으로 가져가서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불타서 소실됩니다. 


오대산사고


월정사


월정사 — 오대산 사고의 수호 사찰로 6.25 때 소실되어 복원.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 (국보 제 48-1호) — 고려 초기의 탑









상원사



태정태세문단세


태조 (이성계) — 킹메이커 이방원과 정도전이 대립 

정도전

조선을 디자인한 사람으로 신권중심을 주장하고 경연제도를 통해 왕을 공부시킨 사람입니다. 제 1창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정종 (이방과) — 2년 만에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 — 세자 양녕대군이 방황 >> 태종은 양녕대군을 폐위 >> 둘째는 출가해 셋째 세종대왕이 왕위를 물려받죠

세종 —

문종 — 세자 문종은 지,덕, 체를 두루 갖췄지만 왕비와 왕의 연이은 죽음으로 6년상을 치르고 몸이 안 좋아져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릅니다.

단종 — 단종은 황표정사로 권력이 없었고 수양대군은 왕을 꿈꾸게 됩니다.   

세조 — 수양대군은 단종을 죽이고 '계유정난'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계유정난

수양대군은 김종서장군을 제거한 뒤 어명으로 대신들을 궁으로 불러 들어오는 족족 죽여버립니다.

김종서, 황보인이 난을 일으키려 했고 자신이 난을 정복했다하여 계유정난의 일등공신이 됩니다.


문수보살


말사 — 월정사에 소속된 사찰로 이러한 절을 '말사'라고 부릅니다.  

세조 — 세조는 말년에 피부병이 심했습니다. 온천을 찾아 상원사를 찾아오자 동자승이 나타나 개울가에서 세조의 등을 밀어줍니다. 그 동자승이 문수보살이라는 설이 있고 그 후 세조의 피부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문수보살에 더 알고 싶으시면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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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문수동자상 — 동자상은 '복장유물' 즉 뱃속에 유물을 품고 있었고 그 안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 가 들어있었습니다.


문수보살상원사 문수보살


자장율사 — 자장율사는 신라 선덕여왕의 친족의 아들 김선종입니다. 선덕 여왕에게 경주 황룡사지 9층석탑을 짓게 한 스님으로 월정사를 세운 스님입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 — 643년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가져왔고, 우리나라에 네 곳에 나눠서 보관했는데 그  중 하나가 오대산이라고 합니다.


진신사리


세조 — 세조는 지은 죄가 많아서 인지 사리를 모아 사리탑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종교의 힘으로 지난 죄를 씻어 보려 한 것일까요? 사리와 함께 발견 된 복장유물은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의 발원문과 세조의 저고리입니다. 아픈 아버지 세조를 걱정하는 마음에 발원문을 써 아버지가 건강하기 빌며 사리와 함께 1466년 문수동자상 안에 봉안한 것입니다.


중창권선문 (국보 제282호) — 조선 전기 승려들이 세조를 위해 상원사를 중수할 때 작성한 문서와 함께 세조가 지은 어첩과 함께 보관되어있습니다. 이는 세조와 상원사의 관계, 유교국가에서 세조가 불교를 중시했음을 알 수 있고, 훈민정음을 제정한 이후 필사한 가장 오래된 자료로 초기의 한글 서체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중창권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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